
내 이름, 내 통장, 내 인간관계까지 전부 빼앗겼는데 정작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떨까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바로 그 상황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원작은 루드비코 작가의 카카오 웹툰으로, 한국 설화 속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으로 변한다'는 모티프를 현대 신분 도용 스릴러로 재해석했습니다. 스무 살 때 저를 그대로 복제하려던 친구를 만났던 기억이 있는 저로서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픽션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신분도용, 단순한 사기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 신분도용(Identity Theft)이라고 하면 주민등록번호나 신용카드 번호를 훔쳐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사건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신분도용이란 타인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법적·사회적 정체성을 가로채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들쥐>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깊숙이 파고듭니다.
주인공 재문제의 경우, 누군가 그의 이름만 훔친 것이 아닙니다. 재산, 사회적 기록, 심지어 재문제를 알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까지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더 소름 돋는 건, 현대 사회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수단이 기억이나 감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 휴대전화, 각종 서류, 인터넷 기록,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합니다.
실제로 출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신분도용 피해자 중 상당수가 금전적 피해보다 사회적 신뢰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보고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작품이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공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신이나 괴물 없이도, 현실의 행정 시스템 자체가 공포의 장치가 되는 거니까요.
원작 웹툰 속 들쥐들의 논리, 납득이 되나요
작품 속 들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단순한 범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 이른바 무연고자(無緣故者)들에게 새로운 삶을 준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무연고자란 법적으로 가족이나 연고가 없어 사망 시 아무도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데,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들쥐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스스로 버린 삶이라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왜 잘못인가.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쉽게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재문제 역시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는 과거에 타인의 글을 이용해 성공했고, 사채업자에게 큰돈을 빌린 뒤 잠적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 모든 관계를 스스로 끊어냈습니다. 10년간 유령처럼 살면서 자기 인생을 먼저 버렸던 셈이죠.
저는 이 지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들쥐의 논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삶을 빼앗아야 하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으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가 단순히 "나쁜 놈을 잡는다"는 구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원작 웹툰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봅니다.
- 들쥐 집단의 논리: 버려진 신분을 재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주는 행위
- 반론: 신분을 빼앗긴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명분도 정당화되지 않음
- 원작의 시각: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렸거나 빼앗겼음을 보여줌
캐릭터 매력,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초반부의 몰입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신분 탈취라는 설정 자체가 만들어내는 의문과 긴장감이 계속 다음 화를 보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의 매력이 스토리의 추진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형사 '순용' 캐릭터가 그랬습니다.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역할임에도, 시청자로 하여금 뚜렷한 연민이나 강한 감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무채색에 가까운 캐릭터로 느껴졌습니다. 캐릭터 심리 묘사(character psychology)란 인물의 행동 동기와 감정선을 세밀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을 말하는데, 순용은 그 쌓임이 다소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
사채업자 '노자' 역시 비슷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재문제와 묘한 동맹을 맺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극 중반 이후 노자의 감정선이 다소 급작스럽게 전환되는 부분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이 선택에 납득이 가는가"라는 물음을 품게 됐습니다. 서사적 개연성(narrative coherence), 즉 인물의 선택이 앞선 감정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다듬어졌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의 긴장감이 소폭 이완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설경구, 류준열 같은 배우들의 무게가 있는 만큼, 그 무게를 받쳐줄 캐릭터의 감정 레이어가 좀 더 촘촘했더라면 후반부도 충분히 힘 있게 가져갔을 것 같습니다.
원작 웹툰 결말이 남긴 진짜 질문
스무 살 때 저를 따라 하던 친구 이야기를 잠깐 꺼내고 싶습니다. 헤어스타일, 옷 스타일은 물론이고 제가 특정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직접 말하기엔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단순히 외형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그랬는데, 내 이름과 삶 자체를 가져가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떤 감각일지 저는 솔직히 가늠이 안 됩니다.
원작 웹툰의 결말은 그 소름을 어떻게 수습하는지 보여주는데, 꽤 묵직합니다. 재문제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뒤 예전 삶으로 단순히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망쳐 왔던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회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사회적 고립자(social isolate)들의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사회적 고립자란 가족, 직장, 지역 공동체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한 채 사실상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가 쓰는 작품의 제목은 '없는 사람들'. 제 경험상 이런 결말은 마무리가 깔끔하다는 인상보다, 오히려 읽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돌게 만드는 유형입니다.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원작이 던지는 질문이 완전히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작품이 마지막에 남기는 메시지는 결국 이렇게 정리됩니다. 나를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건 타인이지만,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건 내가 선택에 책임지는 방식이라는 것.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결말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넷플릭스 들쥐 원작 웹툰이 따로 있나요?
A. 네, 루드비코 작가의 카카오 웹툰 <들쥐>가 원작입니다. 한국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작품으로, 넷플릭스 시리즈와는 각색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원작을 먼저 보기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넷플릭스판을 먼저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Q. 원작 웹툰 결말에서 재문제는 어떻게 되나요?
A. 재문제는 자신의 신분을 되찾은 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없는 사람들'을 집필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단순한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자기 성찰에 가까운 결말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Q. 들쥐에서 설경구와 류준열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A. 원작 웹툰 기준으로는 재문제(주인공)와 들쥐(신분을 탈취한 인물)가 대립 구도를 이룹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설경구와 류준열이 각각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지는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스포 없이 즐기기 좋을 것 같습니다.
Q. 들쥐 시리즈, 후반부가 지루하다는 평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저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반의 신분 탈취 설정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강렬한 만큼, 후반부로 가면서 일부 캐릭터의 감정선이 다소 힘을 잃는다는 의견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다만 스릴러 장르 특성상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서, 기대치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습니다.
결론
<들쥐>는 귀신도 괴물도 없이 현대 사회의 행정 시스템 자체를 공포로 만드는 작품입니다. 신분도용, 사회적 고립자, 무연고자라는 키워드들이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불편한 여운이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현실 기반의 불안을 건드리는 작품은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캐릭터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원작 웹툰이 던지는 핵심 질문, 즉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충분히 묵직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원작의 이 결말을 어떻게 각색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는 걸 권합니다.